짧은 회고

장장 6개월의 창업 생활을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만둔 지는 꽤 됐고, 다음 행선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중이다. 행복한 이별이 어디있겠냐만 나름 오랜 시간을 들여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딱히 부정적인 감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1년 정도만 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마 내가 생각했던 1년의 시간이 실제로 보낸 6개월에 고스란히 녹아있지 않나 싶다. 대부분은 즐거운 기억들이었고 여태까지 그랬듯 창업에 대한 후회는 전혀 남지 않았다. 다만 회고를 통해 앞으로 하지 않아야 하는 실수나 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법 등을 정리해보고 싶다.

왜 그만두었나?

뚜렷하게 이것 때문에 그만두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없는 것 같다. 다만 흔한 연예인들의 이혼 사유로 꼽히는 성격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이런 성격 차이는 누가 맞고 틀린 것이 없고 다른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간극을 채울 의지에 따라 동행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이 다름의 간극이 생각했던 것 보다 아주 커서 채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표님 및 구성원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지금도 전혀 의심이 없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은 진짜 아무 것도 없는 스타트업이 아이템을 찾고 구색을 맞추는 데 까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크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 슈퍼 앱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는 지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보다 더욱 더 현실에 기반한 비즈니스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디어를 찾고 빌드하는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끝으로

나는 또 책임질 수 없는(무책임해 보이는) 이력을 하나 남기고 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나는 후회도 크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지만, 다음 행선지를 정할 때 누군가에게는 그리 좋은 커리어패스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미만의 이력이 두 개나 있고 또 그 이력이 최근에 하나 추가됐으니..

하지만 뭐 어쩌겠어, 겉으로 보이는게 다는 아닌 걸. 누군가에게 내가 해 왔던 일들이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 내 몫으로 남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든 또 하고 싶은 일,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선택할 것이고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 블로그도 좀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공간으로 조금 꾸며보고 싶은 생각이.. 이제서야 좀 든다. 지식의 공유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야인 생활 동안, 아니면 어디를 가게 되더라도 기술, 일상에 대한 글을 많이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