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보내며
2025년을 보내며
2025년의 마지막 날 운좋게 휴가를 쓸 수 있어서 첫째 등원과 둘째 케어를 아내에게 맡기고 집 근처 카페에 왔다(사실 매일 아내가 하고 있다). 이런 시간은 오랜만이기도 해서 어떻게 보내야할까 고민 중인데, 아마 점심 식사를 간단히 하고 서점에 들러 첫째에게 줄 놀이책들 몇 권, 그리고 내가 읽을 책 한 권 정도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지 싶다. 공부나 개발을 좀 할까 싶었는데, 그건 점심 먹고 생각해 봐야지. 정말 얼마만에 나만을 위한 시간이 생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집에서 둘째를 케어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이런 시간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지만, 곧 내가 첫째와 단둘이 여행을 떠날 계획이기 때문에 그걸 핑계삼아 조금의 자유를 누려본다.
둘째의 출생
올해 초여름에 딸이 태어났다. 귀엽고 귀여운 나의 딸. 첫째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 나를 보고 마냥 웃기만하는 둘째가 없었다면 정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확신하게 되는 말들 중 하나는 둘째는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다. 둘째를 조금이라도 고민하는 모든 부모들은 둘째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생각보다 그 존재만으로 가족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확실한 것은 둘째의 육아 난이도는 첫째에 비해 월등히 낮아서 그 효용(?)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높다. 그저 그의 존재함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이 많다고 해야할까? 특히 나는 첫째가 아들이었어서 그런지 이 어린 시기부터 딸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크다.
육아
이 단락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절대 출산 및 육아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누구보다 충실하게 가족을 위한 삶을 살고 있고, 그것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다.
문득 오늘 샤워하다가 아이를 낳지 않을거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 의견을 진정으로 철회할 수 있었다. 결혼과 출산은 완벽히 별개의 문제이고,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굉장히 신중한 일이어야 한다. 경험상 육아 스트레스는 아이 자체로부터 오는 것보다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훨씬 많다. 아이를 계획하기 전에 현재 상태가 모래성같이 무너지기 쉬운 상황은 아닌지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완벽한 계획 하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예상할 수 없는(셀러브리티들의 육아 브이로그를 통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삶의 대격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그런 사람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
지금 회사에 온전히 1년을 다닌 첫 해가 되었다. 더 많은 역할을 부여받았고(사실 입사할 때부터 해주기를 바랐던 역할인데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구멍나지 않게 잘 해낸 것 같다. 그렇다고 탁월하게 혹은 특별히 잘 해낸 것 같진 않지만 기대받은 바를 충족시킨 것 같아 그래도 만족한다.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회사 일에 예전보다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지금 회사가 하는 일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자잘구레한 일의 의미나 자아 실현으로서의 일에 대한 환상은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일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런게 어디있냐고 냉소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나는 반드시 의미있는 일을 해야한다.
철학
요즘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것이 불행 혹은 불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이 나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날 수 밖에 없는 주제인 것 같다. 영원히 살 것 같았던 20대를 지나 30대의 중반에 들어선 지금, 생동하는 존재들을 옆에 두고 보면 자연스레 떠오른다. 나는 예전부터 이 주제에 대해 꽤나 많은 생각을 해왔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불쑥 생각날 때마다 그 미지의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철학을 공부한다고 거창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후대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사상가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죽음에 초연할 수 있었나? 죽음을 앞둔 유명한 비평가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청춘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2026년
내년은 올해와 거의 비슷하게 흘러가리라 예상하지만 또 인생은 어찌 될 수 없으니 내년에 다시 2026년을 보내는 글을 행복한 마음으로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그저 무탈히 하루하루를 보내길, 운이 좋다면 내가 갈구하는 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