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

출근길에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영화 보기를 시도해보았다. 도어 투 도어 1시간 남짓 거리에서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3~40분 정도. 한 편의 영화를 3번, 4번에 걸쳐 보아야 하는데 책보다 나을 것 같았다. 내 인생에 더 이상 영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토막난 소중히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알게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있을것 같기도 했다.

나에게서 기억을 뺀다면

란 무엇인가에 대해 아마 인류가 절멸하는 그날까지도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해묵은 뇌-가슴 논쟁에서부터 영혼에 이르기까지 나를 정의하는 방법은 아마 인간의 수 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나는 확고한 정의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억이야말로 나를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내 기억을 온전히 가진 내가 아닌 어떤 기계도 나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과 경험은 내가 외부 경험을 오직 나만의 감각으로 소화해낸 것이므로 내가 가진 가장 나다운 모습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츠하이머는 나다움을 잃는 가장 무섭고 두려운 병이다. 불치병이라는 극악무도한 특성이 주는 압도적인 좌절감만큼이나 내가 나를 잃는다는 것, 그러니까 이 단순한 문장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내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어렴풋하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싶게 만든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무서운 병이 있는걸까? 만물에 존재 의미가 있다면 이런 병에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백해무익함이 증명된 모기가 있으니 만물에 존재 의미가 있다는 것은 이제 틀린 가정이라고 해야할까? 만약 그렇다해도 이 잔악한 병을 욕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이 좌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한다

밤에 하는 생각은 나를 잠못이루게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이런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직 두려움만이 남을 뿐이고, 이는 잠을 쫓아내 거실을 배회하거나 자고있는 아이를 바라보거나 아내의 얼굴을 만져보는 등 수고로운 결과를 수반할지도 모를 모험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또한 출근길에 보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참이나 잠못이루다 자고있는 아이의 볼에 뽀뽀하는 대담무쌍한 일을 저질러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를일이다.